정치 종교 외교와 이란의 COVID-19 전파
인도주의적 원조 필요에 대해
2020년 4월 15일 한국에서 국회의원 선거를 전국적으로 실시했다. 총선이후에 코로나-19의 감염현상이 증가하지 않고 앞으로 다른 나라에서 치르게 될 선거의 모범적인 예로 사용되기를 바란다. 한국에서 시행된 총선이 판데믹 속에서도 조심하면 일상을 꾸려갈 수 있다는 예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정치 종교 외교와 전염병 전파의 관계가 복잡하게 얽힌 이란의 경우를 살펴보았다.
이란에 COVID-19 전파 초기단계
공식적인 기록에 의하면 2월 19일에 이란에서 최초로 COVID-19 증상을 보이는 감염자 2명이 발생했다. 이 두 사람은 중국과 교역을 하는 사업가들이었다. 이들은 이란과 중국 사이에 직항 비행노선이 취소되자 다른 나라를 통해서 중국을 방문하고 콤(Qom)시로 돌아왔다. 증상을 보인 두 명은 모두 며칠 후 사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란은 오랫동안 서방세계로부터 경제적인 봉쇄를 당하고 있었으며 필수물자들을 주로 중국과의 무역에 의존하고 있었다. COVID-19가 중국전역에 퍼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란과 중국사이의 직항 항공노선이 모두 폐쇄되었지만 무역은 계속되었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이 발표한 에피데믹 선언문도 교역을 계속할 명분을 제공했다. 이란의 경제사정에 따른 중국과의 교역을 고려하면 두명의 감염자들이 확인되기 이전에 환자들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신규감염을 줄이기 위해 이란 정부는 2월부터 주요 도시 사이에 검문소를 설치하고 여행을 제한하였으며, 도시 중심에 있는 모스크에서 기도를 중단하고 모든 학교 개학을 4월초로 연기했다.
성지순례자들의 도시 간 여행 허용
도시 사이에 일반인들의 교통을 통제한 것과 달리 콤(Qom), 마사드(Mashad), 테헤란(Tehran)과 각 시에 있는 시아 모슬림 성지인 레자 묘역과 잠카란(Jankaran) 모스크 등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있도록 허용하였다. 성전들을 중심으로 신규감염자들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았지만 신자들의 종교적 헌신과 종교가 권력의 기반이 된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이 성전들을 봉쇄할 수 없었다.
코로나바이러스가 창궐하고 있던 지역에 있는 시아파 순례자들의 성지인 콤(Qom)시와 시내에 위치한 성전들은 결국 COVID-19 전파의 중심지가 되었다. 초기에 무역상을 통하여 중국에서 대도시로 전파되었던 바이러스는 순례자들과 여행자들을 통하여 이란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매년 1백만명이 넘는 순례자들이 성지를 방문하는데 바이러스가 기승을 부리던 3월 17일에 봉쇄를 발표했을 때도 신자들이 강하게 반대했다. 모슬림 신도들에게 성지순례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행사이며 성지를 방문하면 어떤 병이라도 치유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예상했던 대로 반발이 심했다.
국가 규모의 국회의원 선거
이란은 올해 2월 21일에 국회의원 290명을 선출하는 투표를 실시했다. 이란은 모든 생필품과 의료용품이 부족한 상태에서 자급자족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에서 내부적인 결속을 다지기 위해 개혁파를 누르고 강경파들이 승리해야 한다고 정치 엘리트들이 생각했다.
팔레비 왕조시절에 이란 국민들은 테헤란을 중심으로 자유와 번영을 경험한 사람들이 많았다. 많은 사람들이 이란석유 국영화와 반미국정서에 동조하면서도 계속되는 경제봉쇄 때문에 겪는 어려움은 바꾸기를 원했다. 변화를 원하는 국민들이 강경파보다 개혁파를 지지할 가능성이 높았던 상황에서 승리하기 위해 투표참여를 독려하며 총선투표를 강행했다. 투표장에 사람을 감염에서 보호하기 위한 장비나 물품은 거의 없었다. 투표와 함께 신앙심보다는 집권정당의 정치적인 강령을 전달하는 수단인 금요일 종교집회도 강행했다.
우리는 현지 사정을 잘 알지 못하지만 지난 일을 분석하면서 실수한 점을 되짚어 본다. 이는 실수를 비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객관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앞으로 할 일에 대하여 배우려는 노력이다. 이란과 비슷한 시기인 올해 3월 4일에 이스라엘에서도 총선을 치루었다. 투표소에 나간 유권자들은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였다. 이란과 달리 이스라엘에서는 신규감염자들이 크게 증가하지 않았다. 이스라엘과 같이 우리나라에서도 투표장에 일회용 비닐 장갑을 비치하고 자가 격리자들과 일반 유권자들이 섞이지 않도록 투표시간대를 조정하였다.
이란 정치 엘리트들의 오판
2월 중순 신규감염자수가 증가하고 있을 때에도 이란 정부는 이 사실을 감추었다. 2월 25일 이란 정부는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첫 번째 공식발표 내용에 정치 엘리트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미국이 COVID-19에 대하여 과장된 발표를 하고 있다. 이란의 국회위원 선거에 투표자들이 많이 나오지 않도록 하기위한 선전이다. 누구든지 COVID-19 에피데믹 뉴스를 퍼뜨리는 사람은 처벌할 것이다.” 이들은 코로나-19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했든지 정치적 승리를 위해 희생을 각오한 듯하다.
이란의 종교지도자인 아야톨라 루홀라 호메이니는 3월 3일 성명을 발표했다. “COVID-19는 그렇게 커다란 비극적 사건은 아니다. 우리는 더 크고 중대한 사건도 해결했다. 도전을 극복하고 악을 물리치기 위해 젊고 신성한 기도는 매우 효과적이다.” 그 이후 신규 감염자수와 사망자수가 증가하자 ‘COVID-19는 미국의 생물학적 공격인 것 같다’고 발표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의사 출신 대신 혁명수비대 대장을 신설한 보건센터(Health Commander Center)의 수장으로 임명했다. 이란은 종교지도자에서 군인이 다스리는 나라로 전환 될 수 있는 발판이 마련되었다.
2월 29일까지 593명이 감염되어 43명이 사망했으며, 3월 11일까지는 9천명이 신규로 감염되고 354명이 사망했다. 상황판단에서 실수한 대가는 일반 국민들 뿐 아니라 정치 엘리트들에게도 돌아갔다. 2월에는 엘리트 군인 이란 혁명수비대의 사바니 여단장 (Brig. Gen. Nasser Shabani)이 코로노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했다. 3월 17일 통계에 의하면 국회의원 정족수의 8%인 23명이 감염되었으며, 전현직 실세 엘리트 장치인들 중 12명이 사망했다.
이란의 새해 첫날, 노우루즈(Nowruz)
3월 20일은 춘분인데 이날은 구 페르시아 지역에서 새해가 시작되는 날로 절기를 지켜오고 있다. 북반구에서 밤과 낮의 길이가 같은 날을 신년의 시작으로 하는 관습이 이란주위 아시아 지역에 퍼져 있다. 우리나라 설 명절때와 같이 이 축제날을 중심으로 전국적으로 사람들이 이동한다. 3월 20일 이후에 며칠 동안 신규환자들은 1000명을 넘었으며 매일 100이상 사망하였다 (아래 그림). 몇 번이나 신규감염자수가 최고점에 도달하여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하게 하는 날들이 있었지만 곧 더 많은 환자들이 발생했다.
3월 21일 이후에는 신규환자수가 매일 2000명을 넘었고 정점을 찍었다고 판단하도록 할 만한 날만 해도 3월 중에 세번이나 있었다. 3월 28일에 네번째로 정점이라고 생각하게 할 만큼 3076명이 신규로 감염되었다. 사망자수는 139명이었다. 29일에는 2901명이 감염된 29일에 정부는 ‘판데믹과 앞으로 1년 더 싸워야 할 수도 있으며 최악의 경우에는 사망자가 10만을 넘을 수도 있다’고 정부에서 발표하였다. 다행히 3월 30일에 3186명 신규 감염자를 기록한 후 신규감염자수는 감소세를 보이고 있으나 여전히 1500 이상 신규감염자가 발생하고 있다.
이란 에피데믹의 가장 큰 요소는 무엇이었을까?
이란 정부는 4월 15일까지 WHO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누적 74,877명 감염자와 4683명의 사망자가 발생했다. 정치 엘리트들이 감염된 사실, 인공위성 사진을 분석한 결과, 개인 트윗과 신문방송을 철저하게 검열하는 사실을 고려해 보면 정부의 공식 발표보다 더 많은 감염자와 사망자가 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일부 사람들은 “2월 21일에 철저한 방역 조치 없이 총선을 치렀다가 선거일 이후 감염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 국가적 위기 사태에 직면했다”고 말한다. 마스크나 손소독제 없이 밀착한 상태로 선거를 치루었기 때문에 급속히 전파되었다고 한다. 총선 이틀전에 2명 밖에 감염자가 없었다면 이렇게 급속하게 퍼질 수 있는 가능성은 거의 없다. 총선전에 이미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감염되어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 총선 전후에 정치적인 지도부의 지시를 전파하기 위해 강행한 종교 집회들도 문제를 키웠을 것이다.
신실한 종교적 열정도 고려해 보아야 한다. 이슬람 신도들은 성지순례를 중요시하며 있던 병도 성지에서 치유되므로 감염병은 걸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한다. 종교와 정치의 분리가 모호한 상황에서 정치 엘리트들이 이런 열정을 이용한 것 같다. 우리는 ‘종교적 믿음, 사상적 신념, 정치적선전보다 과학적 사실에 근거한 투명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가장 큰 요인은 30여년 동안 계속된 경제봉쇄에 따른 의료 물자 부족이었을 것이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세계와 이란은 1979년 이후 국교단절 및 경제봉쇄라는 극단적인 관계를 지속해 오고 있으며 여전히 경제봉쇄를 강화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에서 에피데믹을 선언한 시기와 내용도 한 몫을 했다. 선언시기가 늦추어 졌으며 ‘특정국가(중국)를 비방하거나 (중국과) 교역에 영향을 미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선언에 포함하였다. 에피데믹 상황에서 중국과 교역을 위해 여행한 무역업자들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되었다고 판단된다.
맺음말
이란이 서방세계와 관계가 좋았을 때는 중동지방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이 지역의 경찰 역할을 수행했다. 국민들의 경제수준과 민주화 수준도 높았다. 극심한 부패와 빈부격차 때문에 쿠테타가 일어나 왕조를 제거하고 석유산업을 국유화했다 (밑에 박스 서방과의 관계 연대기 참조). 혁명세력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미국을 악의 축으로 규정하였다. 대사관을 점령하고 인질을 400여일 동안 감금하는 동안 서방세계와 사이가 극도로 나빠졌다. 왕조에 동조했던 세력은 미국으로 망명을 떠나 여전히 호화스럽게 살고있다. 혁명세력은 이란에서 정치 엘리트로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경제봉쇄로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은 일반 국민들이다.
이란은 석유와 가스 매장량으로 치면 세계 3위 2위에 해당한다. 1979년 혁명을 통하여 석유를 국유화하여 자존심과 국부를 지킬 수단은 마련했다. 그러나 지난 30여년간 번영과 자유는 사라지고 외교적으로 고립되어 감염병에 대처하기도 힘들만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다. 혁명세력이 이슬람공화국을 설립한 후 적당한 선에서 화해하고 관계개선을 모색했다면 이런 어려움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진단키트와 의약품을 보냈지만 의료물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태다. 미국과 오랫동안 분쟁관계에 있으며, 국제사회에서 이란을 경제적으로 봉쇄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물자 지원이 어려우며, 서방기업들은 물자지원에 따른 불이익을 받을 염려 때문에 지원을 회피하고 있다.
인도적 차원에서 이란을 도와줘야 하며 그렇지 않을 경우 그 피해가 인류에게 되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국제기구와 국가들 및 민간기업들이 어떻게 이란을 도와 난관을 헤쳐갈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 다행히 4월 9일 한국정부는 미국과 사전 조율을 거친 후 일부 장비를 이란에 지원했다고 한다. 한국 기업들도 국제기구를 통해 이란을 지원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면 좋겠다.
서방과의 관계 연대기
1953년 진보파 왕정에 반한 쿠테타 성공, 무사디크(Mossadegh) 총리 석유산업 국유화
1953년 5월 왕정복귀를 위한 반-무사디크 쿠테타 실패, Shah왕 해외도피
1953년 5월 미국 CIA지역spy가 계획한 공작 “Ajax” 반-무사디크 쿠테타 성공,
1953-1979년 Shah왕정 복귀하여 친미 정책 수행, 중동내 최대 미국 동맹국으로 자리 잡음. 국민 대다수에게 반-미국/영국 정서가 이란에 퍼짐. 왕정폐지 및 석유산업 국유화를 위한 많은 쿠테타 시도 및 반정부 시위, 모두 왕조에 의해 진압됨, 지도자로 부상한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망명
1979년 1월 반-왕조 시위 격화, 팔레비왕 Shah 망명
1979년 2월 아야톨라 호메니 귀국 및 이슬람공화국 건립 및 신정정치 시작
1979년 11월 팔레비 신병을 요구하던 시위대 미국 대사관 난입 및 대사관직원 52명 인질억류
1980년 4월 카터 대통령의 인질 구출 작전, 독수리 발톱(Eagle Claw) 실패, 미-이란 외교관계 단절
1981년 1월 레이건 대통령 취임 및 인질사건 종료, 악화된 미-이란 관계 지속
1983년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에서 미국 대사관 폭탄공격
1988년 미국 순양함이 이란 민간항공기 격추, 미국정부 사과 거부.
2002년 부시대통령 이란을 악의 축으로 정의, 핵개발에 대한 의혹폭로, 경제제재 시작
2005년 이란에 강경보수파 대통령 마무드 아마디네자드 취임
2009년 오바마 미국 행정부 출범
2011년 12월 미군 무인정찰기 RQ-170 이란령에서 요격, 정찰기 반환거절
2013년 오바마 미대통령과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간 통화, 이후 핵 실무자들 회담
2015년 7월 미국 오바마대통령과 ‘이란 핵 합의(JCPOAㆍ포괄적 공동행동계획)’를 타결
2016년 미국이 이란 제제 일부해제, 이란 국회의원 선거에서 개혁파 121석확보 보수파 83석
2017년 중도파 로하니 대통령 재집권, 트럼프 행정부 취임, 핵합의 전격탈퇴, 이란 제제 복원
2018년 5월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서 ‘이란과의 핵합의 폐기’ 선언
2018년 7월 대 이란 경제제제 재개
2020년
1월 3일 이란 이슬람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 솔레마니(Qassem Soleimani) 소장 암살
1월 8일 이슬람혁명수비대에서 이라크에 주둔한 미군부대에 15-22발 미사일 발사, 합의된 복수
2월 19일 최초 2명 COVID-19 감염자 발생
2월 21일 국회의원 투표, 금요일 종교집회 강행 (42% 투표율, 강경보수파 290석중 221석 압승)
2월 25일 COVID-19 관련 이란정부에서 공식 대국민 발표
2월 29일 593명 누적감염, 43명 사망
4월 7일 이란정부 IMF에 5조원 (USD $5billion) 대출 신청
3월 12일 이란이 지원하는 민병대가 이라크 타지에서 로켓발사 미군 2명, 영국군 1명 사망
3월 20일 춘분, Nowruz, 이란의 새해 시작
4월 8일 64,586 감염, 3993명 사망
4월 7일 이란정부 IMF에 5조원 (USD $5billion) 대출 승인 미국에서 반대
한국바이오협회는 2019년 6월부터 협회 홈페이지에 '자유기고'란을 개설합니다.
자유로운 형태의 기고를 투고하여주시면 바이오협회 회원사 및 관계자들에게 투고내용이 공유됩니다.
주제는 바이오산업 - 현황, 규제, 이슈 등 과 관련된 주제로, 반드시 작성자와 소속을 기입하여주십시오.
(투고제출 및 문의: koreabio9@koreabio.org - 한국바이오협회 미래성장부문 031-628-0034,00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