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산업을 위한 국가 전략이 필요하다
최성호 한국바이오경제학회장(경기대 경제학 교수)
생명공학의 발전과 인공지능(AI) 같은 정보기술과의 접목, 팬데믹과 기후변화에 대한 대응을 거치며 ‘바이오 경제’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다. 빅데이터가 쏟아지면서 신약개발 속도가 빨라지고 화학물질과 동물성 단백질이 합성생물 소재로 대체되고 있다. 바이오 산업을 ‘제2의 반도체산업’에 빗대는 것은 어쩌면 약한 슬로건이다. 글로벌 바이오 시장은 반도체 시장의 3배에 이르는 광대한 규모이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이 바이오 산업이야말로 3% 수준인 세계 경제 성장률의 최소 2배 이상, 최대 두 자릿수의 빠른 속도로 성장할 것으로 확신하고 있다. 2030년 제조업의 3분의 1이 바이오 기반 공정으로 진화하며 바이오혁신이 세계 경제의 60%에 영향을 미친다는 파급효과 분석 결과도 있다.
이런 가운데 정부가 최근 ‘바이오 경제 2.0′ 정책을 발표했다. 이는 산업통상자원부가 기업혁신의 주무부처로서 제약, 소재, 에너지, 식품을 포괄해 특정 산업에 국한하지 않고 바이오 혁신을 촉진하겠다는 의지로 읽혀져 기대가 크다. 바이오 산업에서 혁신은 고수익과 고위험, 불확실성과 다양성을 기반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매출과 성장, 수출로 이어지는 독특한 다이내믹스를 가진다. 성공하려면 공공지원을 확대하고 첨단의료의 접근성 확대를 통해 불평등을 해소하는 한편, 생명윤리와 건강보험 지정, 바이오 안전 문제 같은 여러 제도적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 한다.
바이오 산업에서 광범위하고 다양한 혁신을 촉진하려면 과거 정보화 촉진법에 버금가는 ‘바이오혁신기본법’ 제정이 절실하다. 하지만 현재 국내의 입법 환경을 감안하면 새 법을 제정하는 것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대신 바이오 경제 2.0 정책의 로드맵을 수립해 최대한 단계적으로, 신속하게 실행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최근 해외와 마찬가지로 국내 바이오벤처들의 기술 개발 성과가 가시화하고 있다. 혁신 수준이 높은 신기술의 개발과 사업화에 초점을 맞춰 보조금과 세제·금융, 투자에 따라 제조와 수출로 이어지는 전주기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 공공 바이오파운드리를 구축해 첨단 바이오 제조 플랫폼의 등장과 확산을 촉진하고 차세대 제품과 서비스 파이프라인의 확보를 지원해야 한다. 다음 팬데믹에 대비해 코로나19 사태에서 진가를 발휘한 메신저리보핵산(mRNA) 기술이나 세포 간 신호를 전달하는 생체분자인 엑소좀, 바이러스 벡터에 기반을 둔 백신 신속 개발 파이프라인 구축이 바람직한 사례다.
미국 바이오 산업의 성지인 보스턴처럼 대학과 연구소, 병원, 기업이 밀집한 지역은 대부분 수도권 가까이에 있다. 한국에서도 경기도 광교와 서울 홍릉의 첨단바이오 밸리를 중심으로 바이오인재를 양성하고 각지의 클러스터를 연계해 시너지를 확보하는 입지 정책도 중요한 과제다.
의약품은 물론, 바이오납사와 생분해성 플라스틱의 소재, 디젤·항공유·선박유와 바이오매스의 에너지 등 바이오 각 부문의 기술개발과 사업화 투자에 대한 조세지원도 긴요하다. 제약바이오는 국가전략기술 범위를 백신에서 면역·세포·유전자 치료제로 확대하고 신약개발 외에 위탁개발 생산, 바이오시밀러 등 제조공정과 임상시험으로 기술 개발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
연구설비와 생산시설이 겹치는 특수성을 고려해 우수 의약품 제조 및 품질관리 기준(GMP) 연구·생산 시설 전체에 대한 투자세액 공제를 적용해야 한다. 정보기술이 접목된 디지털 바이오는 세계적으로도 발전 초기 단계에 머물고 있다. 그래서 정보기술 강국인 한국이 선도할 수 있는 전략분야로 손꼽힌다. 공공기관의 바이오 빅데이터부터 민간과 공유하고 과감한 규제개혁으로 시장을 조성해야 한다. 산·학·연·관의 원활한 소통과 긴밀한 협의를 통해 제도 기반을 확충해 나가야 한다.
20세기가 물리학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생물학의 시대가 될 것이다. 바이오 경제는 성장과 고용은 물론 환경, 식량·에너지, 공급망, 질병정복과 고령화 문제의 해결책이다. 한국 경제가 바이오 경제를 통해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에서 실기하지 않고 새로운 도약의 계기를 마련하기를 기대한다.